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비 와인스틴 (문단 편집) == 활동 == [[1952년]] 출생으로, 보석 상인인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실 성씨로 보아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이 뒤에 -스타인/스틴/슈타인 등으로 불리면 십중팔구 유대인 조상이 한 명쯤은 있다.] 어린 시절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보고 영화의 길을 정했다. 1979년에 동생 밥 와인스틴과 함께 [[미라맥스]]를 설립하여 영화 제작 및 배급을 맡게 되었고, 1990년에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을 수입하여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1992년부터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을 시작으로 그의 모든 영화 제작 및 배급도 맡게 되었으며, 차기작 [[펄프 픽션(영화)|펄프 픽션]]은 미라맥스 영화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하였다. 이후 [[굿 윌 헌팅]], [[셰익스피어 인 러브]], [[무서운 영화]], 스파이 키드, [[에비에이터]] 등이 연이어 1억 달러를 돌파하였고 2002년 [[시카고(영화)|시카고]]는 1억 7000만 달러를 기록하여 미라맥스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동시에 공포 영화 제작 및 배급을 맡은 자회사 디멘션 필름도 설립한다. 1989년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영화 <나의 왼발>이 미라맥스 영화 최초로 5개 부문 후보(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다니엘 데이 루이스), 여우조연상(브렌다 프리커, [[나홀로 집에|나홀로 집에 2]]의 비둘기 아줌마 배우))에 올라 [[아카데미 시상식]]에 진출한 이후로, [[펄프 픽션(영화)|펄프 픽션]]과 크라잉 게임 등이 모두 각본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도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법한 다양한 영화들은 물론 아카데미 수상작들의 제작, 배급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였으며,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경우에는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올리며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최초의 작품상 수상이란 이야기가 있는데,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프로듀서로 크레딧에 올라가고, 작품상을 수상한 프로듀서는 사울 자엔츠이다. 와인스틴은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포함한 대부분 작품상 수상, 후보작에 책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형식으로 이름이 올라가있으며, 아카데미 특성상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이 올라간 사람은 후보로 지명될 수 없다. 와인스틴이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영화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갱스 오브 뉴욕]]이고, 이 중 수상한 작품이 셰익스피어 인 러브.] 1993년부터 [[월트 디즈니]]의 계열사로 들어갔지만 디즈니와 갈등을 빚고 2005년 동생과 함께 [[와인스틴 컴퍼니]]를 설립하여 독립하였다. 공격적이면서도 전략적인 홍보와 캠페인으로 본인이 배급한 수많은 배급작품들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줄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던 건 분명하나 그가 펼친 오스카 캠페인에는 어두운 이면이 존재한다. 하비 와인스틴이 처음으로 대규모의 오스카 캠페인을 시작한 영화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 영화 <[[나의 왼발]]>로 감독, 프로듀서들을 L.A로 이사오도록 설득하여서 아카데미 회원들과 만남을 주선하고, 온갖 행사와 스크리닝을 개최하였다. <슬링 블레이드>의 경우에는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며 영화를 홍보하였으며,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어지간한 오스카 캠페인 비용을 훨씬 넘어서는 대규모 캠페인을 펼쳐 결국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역작이라 불리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꺾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역대 최악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영화 <침실에서>로 <[[뷰티풀 마인드]]>와 경쟁할 때부터는 경쟁 작품의 완성도나 작품 외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를 기사화 하는 방식으로 네거티브 캠페인 역시 펼치기 시작하였는데, 이 수법은 배급작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로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경쟁하였을 당시 다시 사용하였으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로 <[[허트로커]]>와 경쟁할 당시에도 사용하였다. 그외에도 와인스틴이 배급했던 브라질 영화 <[[시티 오브 갓]]>은 본래 2003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서 탈락한 작품이었으나 개정된 규정의 허점을 이용하여 <시티 오브 갓>을 200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렸다. 당시 와인스틴은 <시티 오브 갓>을 여러 차례 재개봉을 통해 장기간 동안 상영시켰다고 한다. 하비 와인스틴의 이러한 캠페인 방식은 오늘날 아카데미 시상식이 대규모 예산을 들인 마케팅과 캠페인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비판 받고 있다. [[https://extmovie.com/movietalk/63258448|하비 와인스틴의 오스카 캠페인 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